매일 밤 당신을 잊는다면,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을까? – 선행성 기억상실증 이야기

오늘 밤,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봤다.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라는 한국 영화.
처음엔 그냥… 감동적인 영화 한 편 보고 마음을 정리하려던 거였다. 요즘 너무 힘들었으니까.
근데 영화를 보고 나니, 뭔가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매일 밤, 기억을 잃는 소녀
영화 속 여주인공 ‘서윤’은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정확히는, 잠을 자면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잊는 병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밤, 일기를 쓴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오늘 이 사람을 만났어.”
“오늘 이런 기분이었어.”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어제는 사라진다. 그래서 일기를 읽는다. 어제의 나를, 어제의 사람들을, 어제의 감정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못한 순간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다웠다.
정말로.
근데 딱 한 장면에서 기분이 묘했다.
밤 불꽃놀이를 보면서 첫 키스를 하는 장면.
처음 손을 잡았는데, 그게 바로 키스로 이어졌다.
서윤이 말했다. “나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아.”
남자 주인공인 ‘재원’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잊고 싶지 않기에 말한 진심.
그런데… 키스를 한 건가?
나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키스였을까?”
성적인 접촉이 꼭 사랑의 증명일까? 그건 욕망이 아닐까?
남자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키스를 한다는 건, 여자에게 무언가를 ‘주는’ 행위일까?
근데 솔직히, 키스를 하고 나면 서로 더 큰 걸 바라게 되잖아. 그 다음엔 또 뭘 바라게 되고.
상대의 욕망을 채워주는 게 사랑일까?
어쩌면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안 해봐서 그런 걸까..?
진짜 사랑은, 성적 접촉 후에 오히려 더 깊어지는 걸까? 문제도 안 생기고, 불만도 없이?
나는 아직도 이런 점에서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름다웠던 이유
재원은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싫어했다. 서윤은 매일 밤 기억을 잃었다. 사고 이후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둘 다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들.
근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매일 새롭게 사랑했다.
그리고 재원은 매일 그녀를 즐겁게 해 주며 기뻐했다. 서윤이는 매일 일기를 읽으며 그를 다시 기억했다.
“기억하지 못해도, 사랑은 여전히 가능하구나.”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봤다.
선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병.
과거의 기억은 남아있지만, 특정 시점 이후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원인
- 뇌 손상 (교통사고, 외상)
- 해마 손상
- 뇌염, 뇌졸중
- 알코올 중독
증상
-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함
- 방금 만난 사람, 방금 한 대화를 잊음
- 시간 감각 상실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잠을 자면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깨달은 것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세상을 생존의 관점에서만 봤던 것 같다.
“목표를 달성해야 해.”
“완벽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그래서 금욕도 하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렸다.
근데 어제 금욕에 실패했다.
생명 에너지적 보존으로는 5개월차,
완전한 금욕으로는 한 달차였다.
어제 완전 금욕이 깨진 하루였다.
그래서 죽을 만큼 괴로웠다.
“나는 정말 망가진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 내가 금욕을 하는 이유는?
근데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생존이 아니라 소통. 완벽함이 아니라 연결.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 불완전해도 함께하는 것.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나는 왜 그토록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마음 구석에는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진심 어린 소통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마지막 대사

재원이 심장병으로 인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친구에게 ‘서윤의 일기장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서윤이가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완화되자,
이전의 기억을 서서히 찾으며 말한다.
“모두가 너를 기억 속에서 잃어가는 거라면, 난 조금씩 너를 기억해 볼게.”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울렸다.
잃어가는 게 아니라, 되찾아가는 사랑.
나도 그런 것 같다.
금욕 실패하고, 자책하고, 괴로웠지만, 영화를 보고 “세상엔 이런 아름다움도 있구나”를 느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나도 천천히 되찾아가는 중이다.
삶의 의미를. 사람과의 연결을. 진짜 사랑을.
선행성 기억상실증, 치료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완치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병은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재활 치료
- 인지 재활 프로그램
- 반복 학습
- 일상 루틴 만들기
보조 도구
- 일기 쓰기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 사진, 영상 기록
- 알람, 메모
감정 기억은 남는다
놀랍게도, 감정적 기억은 비교적 잘 남는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이 장소는 좋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기억하지는 못해도 몸과 마음이 먼저 기억하게 된다.
기억을 잃어도, 사랑은 남는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분명 힘든 병일 수 있다.
매일 밤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다는 건, 환자에게도 큰 고통이다.
아마 그래서 일기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달라고 했을 것이다.
매일 밤 슬퍼하고 아파할 서윤을 지키기 위해.
그러나 사랑은 기억 너머에 있다.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따뜻함, 미소 짓게 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각.
소중한 추억이었다면 언젠가 다시 기억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마무리하며
어제 밤, 나는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을 다시 봤다.
생존이 아니라 소통. 완벽함이 아니라 연결.
오늘 하루도 기억할 수 없다면,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게 사라진다면,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진짜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마음으로 남는다.
참고자료
- 영화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 (2026)
- 대한신경과학회
- 국립재활원 인지재활센터
